2010년 3월 24일 수요일

지붕 뚫고 하이킥 - 126화가 개연성이 부족한 이유

이 글은 ,.님께서 2010/03/23 22:36에 남기신 댓글 ( http://dyhan81.textcube.com/2?expandComment=1#comment9381790 )에 대한 답 글입니다.

 

우선, 이전에 쓴 글 ( http://dyhan81.textcube.com/2 )이 감정적인 단어들을 썼다고 해서 문체가 감정적이라 해서, 이성적이지 않고 논리적이지 않은 글이라고 판단하셨다면 오판이며 선입견입니다. 감정과 논리 전개가 동시에 글을 이루고 있으나 논리 전개가 감정을 따라 가지는 않았으니 말이죠. 처음부터, 감정 표출로 인해 읽는 사람이 제 글의 논리를 따라가는데 방해가 될까봐, 감정적이거나 부가적인 생각은 괄호로 묶어 넣어 놨습니다. (원래 각주로 처리했어야 했지만요.) 괄호로 묶은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 불쾌같은 단어가 들어가는 구절을 모두 삭제하고 봐도 제 글의 논리성은 온전할 겁니다.

 

그리고 왜 제가 인터넷이란 열린 공간에서 억측으로 인신공격을 하여, 어쩌면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일이 될지도 모를 언급을 하겠습니까? (하하하핫!) 하지만, 언급한 인물이 3자 입장에서 봤을 때 그렇게 보여서 그런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못할 건 또 뭡니까? 사실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추측에 대한 언급입니다. 추측을 사실처럼 말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제 글에서는 추측으로 읽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과학자라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없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논리에는 강하지만, 은유와 비유로 묘사되는 문학적 표현과 설명에는 별로 익숙하지 못함을 미리 말해둡니다. (그렇다고 문학적 표현과 설명으로 이해가 꼭 필요한 부분에서 회피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울러, <지킥>이전의 김 감독님의 작품을 하나도 시청한 적이 없음도 미리 밝힙니다. 그 말은 즉, 아마 <지킥>을 눈에 보이는 대로 받아들였고, 마지막 회를 보고 받은 느낌도 가공되지 않은, 아마도 일반 시청자라면 느끼는 심정에 가장 가까울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우선 입장차란 것은 이 작품 자체를 저처럼 그냥 시트콤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비극적 요소가 들어있는 정극에 가까운 시트콤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입장차라면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거라는 [답 글 남겨주신 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 [답 글 남겨주신 님]께서는 <지킥>이 어떤 성격을 띤 작품인지 아시고 보신 애청자이신 거 같습니다만, 제가 시트콤이라는 장르만 믿고 본 또 다른 진짜 애청자라는 것도 사실임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애청자였으면 마지막 회를 왈가왈부하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고정관념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애청자지만 저로서는 정말로 왈가왈부할 수밖에 없으니 이러는 겁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방영은 금요일에 끝났는데 지금까지 이러고 있겠습니까? 드라마로 이런 긴 글 쓰는 거 처음입니다. 아울러, 감독편은 애청자이고 감독편이 아닌 사람은 애청자가 아니라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비평을 쓰면서 가지게 된, PD가 시트콤이 아닌 다른 장르를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는 변함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분이 하시는 시트콤은 제가 안 보려고 합니다. 이런 고통을 시트콤이라는 장르에서 주는 사람은 정말 싫군요. PD가 시트콤 장르를 가지고 장난친다는 생각은 제가 가진 시트콤 장르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의견입니다. 저는 시트콤이 웃겨야한다고 생각하고 희극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D가 시트콤에 비극적 요소를 넣는다는 그런 것도 모르면서 봤냐고 물으신다면 사실이니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범위의 생각은 개인 선호도에 따른 생각일 뿐이니까 이 생각만큼은 간섭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답변 주신 글을 훑어보니, 제 관점들이 126화와 그전 에피소드들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을 시도하신 거로군요? 하지만, 재반박의 여지가 많아 보입니다. 저도 조목조목 재반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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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yhan81.textcube.com/2 본문 인용

126화가 이전 에피와 개연성이 있다고 보는 답글

[n]답 글 (재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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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화까지의 세경의 생각과 행동은 현실을 알고 거기에 적응해가는 모양으로, 거기서 세경이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면서 계속 성장한다. 지훈에게 그동안 받은 것들을 돌려주고, 감정을 정리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인다. 그 정점이 125화 준혁에게 사랑을 고백 받는 장면. (그 때까지 짝사랑이라지만, 남녀가 서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면 이미 짝사랑이 아니다.)

세경은 준혁을 한번도 남자로 받아드린 적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준혁이 짝사랑을 한 것이며, 세경은 준혁과 키스할 때까지도 그의 호의 받아 드려준 것 뿐입니다. 고마워 할 뿐인 거죠.

1제작진 입장과 똑같은 입장이네요. ... 이건, 여성심리를 전혀 모른 혹은 전혀 모를 거라고 생각한 제작진의 큰 실수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면을 아름답게 하기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하고 키스를 시킨 모양인데, 이 연출 후, 126화에서 또 다시 지훈에게 고백했기 때문에 인터넷 게시판 상에서 신세경 캐릭터가 요부라는 비난을 듣는 걸 봤습니다.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사회 심리학을 들먹거려 현학적으로 보이긴 싫지만, 여성 심리상 남자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의 손을 능동적으로 끌어 잡는 행위, 그리고 키스를 받는 행위는 성행위에 준하는 행위로서 그동안 시청자들에게 심어준 신세경 캐릭터 이미지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예전에 쓴 사회 심리관련 글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 http://www.parkoz.com/zboard/view.php?id=express_freeboard&no=369497 ) (결말 지세커플링의 개연성 약화의 결정적 증거 중 하나)

 

그런데 126화에서 뜬금없이 세경은 완전히 막다른 길을 선택하고 (지훈에게 고백) 감독은 그런 선택을 한 세경을 죽여 버린다. (자동차 사고 암시) 충격적이다. 일반 시청자의 눈을 통해 그동안 관찰한관찰한 극중 청순글래머 꿋꿋한 식모 신세경 캐릭터를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는 1~125화와 126126화 결말은 도저히 이어질 수가 없다.

청순글래머는 세경의 비쥬얼 적인 면모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꿋꿋함과 그녀의 고백이 왜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이어지는 건가요? 꿋꿋하게 고백을 한 것인데요. 그리고 지훈에게 고백이 그녀의 막다른 길은 아닙니다. 고백 또한 그녀의 성장의 단면입니다.

2해당 대목은 비주얼을 강조하고 읽는 사람의 감정을 자극해서 설득력을 얻으려한 것이 아닙니다. “청순글래머 꿋꿋한 식모라는 수식은 대중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대한 인식을 서술한 것일 뿐이며, 사실 저는 신세경 캐릭터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125화까지 시청자 눈으로 관찰한 성장한 신세경 캐릭터는 공원 벤치 앉아 셀카를 찍으며 짝사랑의 가장 아픈 때를 극복했고, 이후 126화에 이르기까지 지훈의 여러 가지 도움에 거리를 두는 느낌의 캐릭터였습니다. 반대로 준혁과 점점 가까워져 갔구요. 물론,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고, 여전히 지훈을 사랑하고 있음을 자각함으로서 하게 되는 고백 또한 성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습니다만, 위에서 언급한 준세 커플의 키스 연출로 인해, 지훈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세경의 행동은 당위성이 약화됩니다. (개연성 약화)

 

저는 러브라인을 위주로 작품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러브라인의 개연성을 위해 사용한 감정의 흐름에 대한 연출과 장치 그리고 복선이 어떻게 쓰였는지 말씀드리기 위해 러브라인을 언급한다는 점에서는 일단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한동윤씨가 답글로 다신 내용입니다. 일단 본인은 러브라인 자체가 비난원인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그 점은 접겠습니다. 하지만, 일반적 시청자는 다릅니다. 지붕킥 시청자 게시판에 가 보십시오. 대부분의 글이 지세니 지정이니 준세니하는 러브라인에 대한 글과 그 비난입니다.

3, 제가 러브라인 위주로 작품을 보는게 아니기 때문에 접어두구요.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어요.” 라는 대사의 경우는 김PD와 대화 도중 나왔던 말이라며 자랑까지 한다. 이건 일반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신세경씨의 인성에 어두운 면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정도이다. (솔직히 난 실재로 신세경씨가 염세적인 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세경씨를 음해하려는 말이 아니다. 오해할까 분명히 밝히지만, 나는 신세경의 아름다움과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력에 홀딱 빠져있는 팬이다. 오히려 신세경씨의 그런 어두운 면이 (만약 있다면)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개인의 인터뷰를 자랑이라고 인식한 것은 한동윤씨의 시각 아닌가요? 그리고 인터뷰의 단편적인 몇 마디 가지고 신세경씨 인성을 언급한 것은 성급한 추측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신세경씨가 굉장히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보며, 실제의 신세경씨는 세경이와는 전혀 다른 활발한 캐릭터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4이 언급을 한 부분은 일반 시청자 시각에서 미디어를 통해 보인 바 느낀 바를 언급한 것입니다. 신세경씨가 일반 대중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결말을 너무나 당연한 결말로 쉽게 언급하는 기사가 인터넷에 19~20일에 떴습니다. 저는 이때 개인적으로 신세경씨가 생각보다 경솔한 면이 있고, 죽음을 쉽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이상, 그 사람의 행실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파악할 수밖에 없죠. 그건 물론 제 주관적 시각이 맞지요. 그런데 저뿐만이 아니라 인터넷 상 여러 <지킥> 게시판에서 신세경씨의 이런 행동을 문제 삼고,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통해나간 후, PD에게 결말의 책임이 있기보다는 신세경씨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처럼 오도되어 네티즌들 비난의 집중 포화를 맞는 것까지도 봤습니다. 아무튼, 그런 점을 보고 언급한 대목입니다. 저는 여전히 신세경씨의 진짜 인성이 어떤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성에 문제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질 정도라고 그랬지 문제가 있다는 단정을 짓지는 않았습니다. 신세경씨를 비난할 의도도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신세경씨의 팬으로서 옹호하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 http://dyhan81.textcube.com/3 )

 

(감독이 하는 말로 하면, 지세커플이 자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결말의 단 7분 동안에!동안에!

자각이라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행위가 아닙니다. 순간!에 가까운 것이 자각입니다.

5, 자각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적게 걸리고를 문제 삼고자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느끼는 순간 그게 자각이죠. 그러나 그 동안 자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갑자기 지훈이 자각이라는 것을 하더란 말입니다. 자각하게 되는 것도 그렇게 되기까지 감정이 쌓이고 지식이 쌓여야 합니다. 지훈과 세경 커플의 감정 변화에 대한 연출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상당량 숨겨둔 장치로 억지로 필연을 만든, 세경의 고백을 통한 지훈의 자각은 제가 봤을 때 상당한 무리수였습니다. 고백 자체도 이미 (2에서) 언급했던바와 같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연출 부족)

 

그러나 보통의 시청자들은 이런 장치를 알 수 없었을 뿐더러 극중 인물들이 모두 행복해지길 바랐기 때문에 그런 장치가 그저 소품으로만 보였고 결국 무방비 상태로 126화의 결말의 충격을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절절하게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극적 장치들을 보는 배경지식도 없었기에 (당연히 일반 시청자들이 가지고 있을 턱이 없다)

시청자들의 눈은 예리합니다. 특별히 PPL을 하지 않아도, 황정음의 패션이나 극에서 나왔던 목도리, 아이들에게는 인형 등 눈에 띄게 되는 거고 실제로 유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아래에 더 자세히 쓰지요.

6저는 시청자 아닌가요? 그런데 왜 극중 장치를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발견하더라도 그 의미를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그리고 시청자들의 눈썰미가 PPL을 특별히 하지 않아도 패션 유행에 영향을 미칠 만큼 예리하다고 하는데, 그 눈썰미가 극의 장치를 파악할 수 있는 눈썰미도 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네요.

 

(나는 김PD가 이래서 염세론자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실재로도 김PD가 지독한 염세론자일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난 이런 결말에 대한 의견을 낸 신세경씨도 어느 정도는 염세론자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김PD의 의도를 되도록 존중하려고 하는 정말 바람직한 배우든가...)

PD는 예전 인터뷰에서 자신이 염세론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염세론자라는 것이 그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한편의 시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가 시청자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작품을 한다고 진단할 수는 없는 겁니다.

7사전에 찾아보면, “세상을 괴롭고 귀찮게 여겨 비관하는 사람을 염세주의자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극중 등장인물이 그간 감독이 보여준 연출을 통해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두 행복해질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시청자들은 미처 보지 못한 혹은 보였어도 그 순간엔 그 장치가 전혀 지훈-세경의 결말이 가능한 필연의 장치로 사용되지 않았던 그런 장치가 결말에서의 필연적 장치로 묘사되고, 결국 감독이 스스로 만든 세계를 붕괴시키는 비관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행복의 증거로 보는데, 감독은 그것을 비극의 도구로 사용하니 염세론자라 하지 않을 수 없고, 저는 믿음이 무너졌음에 우울해 했던 것이고, 또 저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도 우울해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126화 결말을 지세커플로 가져오기까지의 과정도 일반 시청자가 받아들이기엔 힘들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126화 결말 자체만 놓고 봐도 비판의 여지는 또 있다. 바로 산골소녀의 성장기라더니 성장 끝에 죽음의 수순을 놓아두는 것 자체가 그동안의 성장을 부정해버리는 꼴을 만든 셈이다.

사람들이 성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물질적인 성장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씬의 대화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만, 세경이 성장한 것은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대학에 가고 우리사회 최하층1%에서 탈출하는 물질적인 성장이 아닙니다. 그녀는 마지막에 내적 성장을 한 것이고 마지막 고백이 그녀의 성장의 한 단편입니다.

8제가 물질적 성장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도 고정관념에서 나온, 제 생각에 대한 평가로 보입니다. 적어도 저는 125화까지를 통해 극중 세경이가 물심양면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26화의 고백만이 궁극적인 성장이라고 보시고 우리가 본 다른 성장은 성장이 아니라는 것처럼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음을 말하겠습니다. [댓글 남겨주신 님]과 제가 125화까지의 내용이 결말과 이어지는 지의 여부에서 기본적인 입장차이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시각차이는 당연한 것이므로 입장차를 재확인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한 인간이 아무리 성장해도 현실 앞에 긍정적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PD는 피력한다. 그리고 죽여 버린다. 작품이 현실적이라고 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아도 언젠가는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리라는 희망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픔을 통해 성장해서 한계를 극복한다. 물론 자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택하지는 않는다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식모라는 계급을 탈출할 수 있는 희망은 현실에 없고, 따라서 죽거나 시간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게 감독 생각이다. 감독은 그게 현실이라는데, 대다수의 보통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번 김PD의 염세적인 성향이 드러난다.)

PD가 처음부터 연출하려는 지향점은 현실이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도 왜 그녀와 지훈이 맺어지지 못 하는지 극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지요. 만약 세경이가 마지막에 자살을 한다는 결말이라면 저도 크게 비판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세경이는 자살을 한게 아닙니다. 극을 PD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PD가 죽였다. 라고 주장하면 좀 우낍니다만, (사실 저는 죽음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 세경의 죽음에 대한 범인을 꼽으자면 그것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회가 죽인 사회적 타살이지요. 그녀가 죽지 않아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똑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세경, 신애가 살기에 서울이란 공간은 너무나도 힘든 현실입니다.

PD가 그래서 그의 생각을 나타낸게 아니라 현실을 그린거라고 말하는 겁니다. 계급과 계급과의 이루어 질수 없는 현실인 것이지요. 한동윤씨가 말하신 대다수의 보통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을 말한 건지 궁금합니다. 식모를 탈출해서 지훈과 연결되는?게 현실인가요? 그런게 보통사람이 인식하는 현실이라면 그건 극중에 등장한 신데렐라처럼 왕자님과 결혼하는 현실이지요. 그런 디즈니식 엔딩을 말하는 거라면,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판타지입니다. 과연 디즈니 판타지라는 매트릭스 속에서 사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요?

9일단 김PD현실이라며 보여주는 여러 가지 관점이 그가 정말 염세주의임을 느끼게 합니다. 당연히 자살이 아니죠. (이런 기본적인 인식을 제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극중 식모 세경이 계급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계속 했지만, PD는 그녀를 죽였습니다. 감독이 인식하는 현실에서는 식모 계급 세경이 계급의 굴레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고 못을 박는 메시지를 결말을 통해 보여준 겁니다. 다시 말해, 세경의 계급 탈출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감독의 현실이란 세경이 죽어야만 이룰 수 있는, 따라서 현실에서는 절대 계급 탈출이 일어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김PD 작품이 디즈니 판타지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고, 저 또한 그 판타지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저에게 미리 가지고 계신 선입견이 상당히 많아 보입니다.) 현실에 대한 저의 인식은 본문에 쓴 내용과 인용하신 글 중에 잘 나와 있으니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PD가 인식하는 현실과 제가 인식하는 현실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식하는 현실이 일반인들이 가진 현실에 대한 인식과 더 부합한다고 확신합니다. 본인 스스로 자기가 처한 계급을 영원히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게 정말 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스스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극중 결말의 세경에게서도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동안 극중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청순글래머라 매력적이고 신애의 엄마 역할까지도 톡톡히 해내는 꿋꿋한 캐릭터가 지훈과의 아픈 짝사랑도 이겨내고 성장해서, 지훈이 아닌 다른 사랑 (우리 보통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그 다른 사랑은 준혁인데, 꼭 준혁이 아니어도 상관없다)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현실적 캐릭터가 된 거 같았던 세경이 지훈과 이루지 못할 사랑을 이루려고 고백을 시도했다는 것은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세경이 고백한 것은 지훈과 사랑을 이루려고 시도 한게 아닙니다. 이건 제 의견도 아니고 극중 대사에서 언급된 것이지요. 한동윤씨가 잘못 보신 겁니다. 그리고 세경이 다른 사람과 이루어 지는 것은 지붕킥에서 별로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PD가 중점을 둔 것은 계급과 계급간의 충돌이거든요.

+

그간 우리가 관찰해왔던 세경 캐릭터를 멋지게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훈과 그 이루지 못할 사랑을 이뤄지게 해놓고, 당연히 현실적으로는 그게 불가능하니까 두 캐릭터를 죽여 버린다. 죽임으로서 비극을 극대화했지만, 그 비극은 사실 그간 교묘하게 삽입해놓았던 장치들을 이용해 세경이가 원하던 사랑은 사실 지훈과의 사랑이라는 명분을 갑자기 내세워 그간 시청자가 관찰했던 극중 세경 캐릭터와 억지로 이격시킨 후 파괴하여 세경이 지훈에게 고백하게 만드는 과정으로 얻어낸 어이없는 비극일 뿐이다. (내가 보기엔 원래 김PD가 계획했던 비극을 얻어낸 것일 뿐인데, 신세경씨는 그게 본인이 낸 의견을 김PD가 동의해줘서 시나리오에 반영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세경이가 원하던 사랑은 원래 지훈이었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극에서 계속해서 세경의 짝사랑은 표출되지 않았습니까? 새삼 놀라운 상황도 아니지요. 그리고 세경이 바뀐 것은, 이전에는 지훈과 이루어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만, 세경이는 그사람과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고 자신이 그동안 컷다고 하는 차이입니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극대화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죽음까지 간 것은 독한 연출이라고 봅니다. 세경이가 죽지 않는다고 해서 해피한 마무리는 아니지요.

10아 예, 맞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니 <지킥>에서 세경이 지훈에게 고백함으로서 굳이 사랑을 이루려한 것은 아니더군요. 그저 마지막이고 그 속에 있던 말을 내놓음으로서 찰나의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게 세경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지훈은 자신의 세경에 대한 감정을 눈물을 흘리며 자각하고요. PD의 의도는 이 장면에서 계속 엇갈리기만 하던 지훈과 세경의 사랑이 겨우 합쳐지는 장면을 묘사를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세경이가 원하던 사랑은 원래 지훈 이었습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김PD만의 생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렇게 인식시키고 싶었다면, 그전에 지훈과 세경이 서로 남자와 여자로 인식하고 사랑을 시도하지만 엇갈리는 지세 커플만의 유일한 연출을 좀 더 많이 보여줘야 했습니다. 지훈이 세경을 위해 값비싼 선물을 하고, 너무 과할 정도의 돈을 챙겨주는 등의 친절로 표현하는 사랑과 세경이 지훈을 위해 목도리를 손수 짜서 선물하고, 사골을 우려내고 LP를 선물하는 등의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랑은 전부 나중에 다른 러브라인에서 그 의미가 퇴색됩니다. 지훈의 값비싼 선물 (구두)과 돈(생활비)은 정음에게도 주어지고, 세경의 (지훈 것보다도 긴) 목도리는 준혁에게도 선물되고, 준혁에 대한 세경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준혁-세경의 에피소드는 지훈과 세경의 그것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PD 스스로 사랑이란 감정의 모호함을 시청자들에게 너무 숨겼습니다. 시청자들이 그래도 지훈과 세경의 인연에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줬어야하는데, 그 연출에 실패하고 오히려 다른 러브라인의 당위성을 부각시킨 꼴이 되어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속았다는 기분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 세경의 죽음에 대한 암시 자체가 희극/비극을 만드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며, 그냥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암시는 감독의 현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거라고 간단히 보고 저는 넘어가고 싶습니다. (9참고)

 

* 지정준세 커플의 복선을 끊임없이 부각시킴으로서 전통적인 복선 장치에 익숙해져있는 일반 시청자들을 완벽하게 혼란시킨다.” 예를 들어:

- 준세 커플은 지훈의 빈자리를 체우려고 끊임없이 다가서고 같이 있어주고 도움이 되려하는 준혁의 열렬한 시도가 있었고, 준혁과 세경의 관계가 진전됨을 나타내는 소품으로 목도리를 집중적으로 카메라로 클로즈업 시키고, 세경과 준혁의 대화상에서도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목도리를 상당히 부각시켰다는 점을 기억할 것이다.

- 지정 커플은 외진 곳에서의 키스라든지, 병원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던지, 정음의 치어리딩과 같은 깊은 연인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을 시키고, 정음이 차에 치여 병원에 누워있을 때, 지훈이 손을 잡고 손가락 굵기를 재어보는 장면을 클로즈업 시키고, 126화에서 세경과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기 직전까지도 지훈이 손에 든 반지 상자를 클로즈업시다.

좀 기분나쁘실 수도 있는 데, 한동윤씨는 복선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시는 것 같네요.

<문학>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미리 독자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서술. 이 복선입니다.(*네이버사전)

위에서 예로 언급하신 것들은 복선들이 아닙니다. 준혁의 열렬한 시도는 그 자체가 극의 흐름이지요. 세경을 좋아하는 직접적인 표현들인데요. 지정커플 키스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게 어떻게 복선이 되나요. 캐릭터들의 감정흐름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데요. 이런것들은 복선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목도리는 하나의 상징으로써 이해할 수가 있지요. 하지만 이것도 복선은 아닙니다. 목도리는 앞으로의 암시보다는 세경의 마음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지요.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11아닙니다. 오히려 바로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복선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를 몰랐습니다. 계속 의도하는 바와 거리가 있는 전문 용어를 계속 쓸 뻔 했네요. 그걸 복선이 아니라면 어떤 용어로 대체해야 제가 말하려는 바를 올바로 말씀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냥 장치라는 말로 대신할까요?

 

등장인물 사이의 감정 흐름, 극의 흐름과 그 장치들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서 다가오는 미래에 둘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물어볼까요? 그럼 도대체 [댓글 써주신 님]은 어떤 연출이나 장치가 126화로 이어지는 단서가 되는 것으로 보셨습니까? 제 눈에는 없어 보입니다. 있어도 필연적이고 지훈-세경 관계에서 유일무이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 지세 커플의 장치들은 준세지정 커플이 있는 공간 사이에 완벽하게 스며들어 일반 시청자들 시야에서 멀리 놓이거나 철저하게 숨겨진다.” 예를 들어:

- 지세라인에서 복선으로 주장되는 마지막 휴양지는 원래 정음이 우연히 환자 가족에게 얻은 전시회 티켓으로 지훈과 같이 둘이 가기로 한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인데, 화면상에서는 “2009 볼로냐국제그림책원화전타이틀 작품인 이 작품만 보여주지만, 실재 전시장에는 많은 그림이 걸려있고, 그중에는 <지킥> 결말에 지훈과 세경이 공항으로 가면서 만나게 되는 비를 암시하는, 휴양지로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번개와 비바람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 (나는 전시회에 가서 다 봤지만, 안 가본 시청자는 이걸 어떻게 알겠나?)

- 지훈이 선물한 핸드폰은 이벤트를 통해 우연히 얻게 된 것을 세경에게 준 것이긴 하지만, 결말에서 영원히 멈춰진 시간을 암시하는 도구로 쓰인다. 지훈이 자기 자리에 놓인 세경의 핸드폰 (시계)를 발견하고 나가는 장면에서 방에 걸려있던 시계가 사라져 있다.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나는 다 모르겠고,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지세론자들에게 물어보든가, 그들의 쓴 글을 찾아보라.)

(저는 우선 지세론자가 아닌 것을 밝힙니다. 비쥬얼적으로 세경, 준혁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한동윤씨는 복선이 철저하게 숨겨진다라고 표현하셨는 데, 원래 복선이란 게 그런겁니다. 넌지시 암시하는 것이 복선이지요.

20여분밖에 안되는 짧은 러닝타임에서 헛되게 넘길 분량은 없습니다. 우리가 보는 반영분도 사실 실제 촬영분에서 편집, 편집되어 나오는 것이지요. 전시회에 가는 에피소드는 커플들의 엇갈림이 나오는데, 굳이 전시회에 갈 이유도 없고, 그리고 그 전시회에서 꼭 마지막 휴양지라는 작품 앞에서 씬을 구성할 이유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극은 지훈과 세경이 그 그림 앞에서 만나고 둘이 대화까지 나누지요. “휴양지인데 마지막 휴양지라니라며 쓸쓸하게 답하는 것이 세경입니다. 이런게 복선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것 말고도 지붕킥에서는 여러 가지 복선과 상징이 많이 쓰였습니다. 마지막화에 지훈이 세경에게 준 책은 데미안인데 이것 역시 대충 고른 책은 아니지요. 데미안 선물의 경우 불친절한 상징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만, “마지막 휴양지의 경우는 정말 친절한 복선이 아닐까요? 세경이 작품에 대한 감상까지 말했으니깐요. 사실 지붕킥은 공중파 연속극인 만큼 비교적 쉬운 편으로 PD가 연출한 편입니다. 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화에 따라 복선, 상징, 패러디, 오마쥬, 클리셰 등 지붕킥은 애교 수준입니다.

12여기서는 장치를 또 복선으로 인정해주시네요? 저는 제가 원래 의도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장치라는 표현을 사용하겠습니다.

 

씬을 구성한 것 자체가 지세 결말로 이어지는 필연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청자입니다. 마지막 휴양지작품은 적어도 지훈과 세경의 관계가 거기서 끝임을 의미한다는 해석과 결국 지훈과 세경이 이어진다는 해석 이렇게 두 가지의 중의적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장치를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해 넌지시 암시하는 복선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정말로 결말로 가는 필연을 위한 연출이었다면, 그냥 저는 연출실패라고 간단히 평가/결론 내리겠습니다.

 

아무튼, 일반 시청자들이 믿어왔던 (믿도록 했던) 지금까지의 우주를 완전히 부정하고 파괴해서 싹 치워버리고, 거기에 지금까지의 우주와는 전혀 다른 (시청자들은 전혀 몰랐던) 감독만의 새로운 우주를 끼워 넣고 그걸 시청자들에게 이해하라고 하고 있다. 공감은 전혀 없이 (아니 공감을 못하도록 속여 놓고) 그냥 감독 생각이 그러하니 이해하라는 압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시간을 멈췄든 사고가 나서 세경과 지훈이 죽었든, 결말 그 순간 작품 전체의 숨이 멎어버렸다. 죽은 후 미래란 없다. 감독이 스스로 작품이 가질 수 있는 미래를 부정함으로서 숨통이 끊어진 작품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에필로그가 무슨 소용인가? 두 메인 캐릭터를 죽임으로서 일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했던 다른 등장인물들의 희망찬 미래도 모두 정지해버렸다. 이 얼마나 염세주의적이고 감독 중심적인 결말인가? 이건 우선 시트콤이고 대중이 보는 공중파 방송이다.

시트콤과 대중이 보는 공중파 방송은 맞는 데, 이게 15세 이상가 인건 아시죠? 특별히 폭력적이지도 야하지도 않고 초등학생이 2명이나 메인으로 출연해서 메인인데, 15세 이상가 일까요? 그 이유는 내용자체가 15세 이상으로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트콤이라고 이래이래야 한다고 한계를 지정하다면 그것으로 또 다른 폭력이자 규제가 아닌가 싶네요. 지붕킥은 1회부터 블랙코메디 였거든요. 그리고 본인이 공감 못하고 이해못했다고해서 그것을 만든 PD에게 쌍욕을 퍼붓고 인신공격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이 주어지는 것인지요?

PD도 거창하게 말하면 한명의 예술가이고 자신의 표현의 자유가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결과(즉 시청율)은 본인이 부담하는 것이지만, 이해하라 말라고 압력을 준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13나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건지 모르겠네요. 제 나이가 올해 30입니다만... 그리고 하도 분해서 감정표출은 했지만 쌍욕은 안했고,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하는인신 공격 역시 안했습니다. (염세론자라고 말한 것은 충분한 근거 제시하고 한 말이고, 이건 [댓글 쓰신 님]도 인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글의 가장 처음에 표현의 자유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글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도 않은 일과 억측을 근거로 하는 공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충격을 시청자들에게 안기지 않으려 했다면 마지막 그 결말이 어떤 식으로든 125화까지의 전개와 직접적으로 절대 이어지지 않게 했어야 했다. 작품을 보는 일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이해한 작품의 내용을 그간 몰래 설치한 장치 없이는 절대로 연결될 수 없는 개연성 없는 결말과 직접 연결했기 때문에 이해가 안가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따로 논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로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감독을 비난해도 감독은 할 말이 없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비판은 자유로와야 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PD에게 하는게 제대로운 비판인지 원색적인 비난인지는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14점점 웃겨지는 군요……. (욕이 들어가고 근거가 없는) 원색적 비난을 한 일 없습니다. 이전의 글 처음에서 말씀 드린 바를 다시 밝혀 말씀 드립니다만, 제 글의 어떤 대목이 원색적 비난이라 제 주장의 당위성을 약화시키는지 근거를 들어 설명 바랍니다. 참고로 부제의 비난은 정말 제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의 심정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그저 비난을 위한 비난이 아님을 밝힙니다.

 

평소 김PD는 평행우주 이론 (혹은 그와 유사한 우주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는 것 같다. 그 증거는 김PD<지킥> 공홈에 21일 오후에 미리 올린 종영 인사 마지막에 이런 언급을 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한동윤씨의 평행우주 이론에 대한 글은 잘못 쓰신 듯 하네요. “드라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평행하게 달리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입니다.”라고 PD가 말한 것은 드라마는 우리의 또 다른 현실이라는 것이고, 지붕킥이 끝나더라도 드라마의 캐릭터는 없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 숨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를 들어 제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10여년이 훌쩍 지났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살아 계신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런 의도로 꺼낸 평행우주 이론을 가지고 자의적으로 멀티엔딩의 이론으로 적용하시는 것은 잘못 된 것이지요.

15평행우주 이론 자체에 대한 설명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요? 평행우주 이론은 결말처리에 사용될 수 있는 아이디어입니다. 아이디어 제안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PD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김병욱 PD에게 하고 싶은 말 (~~~!! 분이 아직도 안 풀렸다!): 나는 경고한다. 아주 불쾌하다는 것을... 우리가 사는 우주는 그 다양한 우주 중 단 하나에서 일관성을 가지고 단 한번만 사는 거다. 그런 우주에 함부로 장난질치지 마시라. 실험하지 마시라.... 속이지 마시라! 불쾌하다

개인적인 의견인 데, 김병욱PD는 아마 시청자들의 이런 반향을 예측했을 겁니다. 알면서도 엔딩을 밀어붙였기에 저는 독하다고 표현을 한 것이구요.

16저는 김PD가 결말을 억지로 붙인 행위와 우리가 인식해왔던 <지킥>을 잘 이어지지 않는 결말 한방에 망친 것을 분해하는 것입니다. 비판의 논리라기보다는 맨 처음에 쓴 부제와 같은 성격의 비난일 뿐이니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역시, 욕지거리를 내뱉는 원색적 비난임을 인정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이런 강력한 느낌의 구절을 김PD님이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감독님이 좀 알았으면 한다고요.

 

저는 기본적으로 댓글을 남기신 분과의 시각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감독이니 그 작품은 감독 것이고 따라서 그것을 보는 이들은 무조건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감독이 어떻게 말하건 무조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그게 바로 감독이 보는 사람에게 가하는 정신적 폭력이라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이라는 것을 파악 하십시오. 작품을 만드는 이는 해당 작품을 통해 작품을 보는 사람과의 대화를 시도하게 될 것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극을 이해하는 주체는 분명 시청자입니다. 작품의 이해를 그 작품만으로 설명하지 못해서 제작자의 코멘트가 달려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그 작품으로 시청자에게 말하려했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모호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모호한 연출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극중 등장인물이 인지하지 못하는 모호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시청자마저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 건 표현력 부족, 연출력 부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것은 감독이지 관객이 아닙니다. 관객은 작품을 관람하면서 이해를 할 수도 있고 전혀 이해를 하지 못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작품을 이해를 했다는 말은 감독의 의도 또한 (메세지) 이해했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분석을 하려면 우선 작품을 충분히 이해를 해야 합니다. 평론가들이 영화를 보고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평론하는 것 봤나요? 제가 한동윤를 가장 비판하는 점이 이것입니다. 지붕킥에 대해 다 이해도 못 하고 이해를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지붕킥 이전에 김PD를 재단하려는 자세가 가장 잘 못 되었다고 생각되거든요. 한동윤씨 말대로 작품이 잘 만들어지지 못 해서 비판당할 수는 있는 겁니다만, 한동윤씨의 글은 기분이 나쁘다, 불쾌하다, PD가 염세주의자다 등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않습니까?

작년에 개봉한 박쥐가 생각나네요. 한동윤씨는 박쥐를 보셨나요? 박쥐를 보고 어떤사람은 굉장히 재미있었고 어떤사람은 기분만 더러워졌다 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게 글로써 남기게 된다면 달라지는 겁니다. 무언가 비평을 하게 된다면 작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지요. 어느 사람이 박쥐는 기분나쁜 고어, 피가 난무, 감독은 사이코이런 식으로 글은 남긴다면, 그야 말로 무지함의 증거 아닙니까? 자신의 무지함을 감독의 정신적 폭력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한 태도인거죠.

저는 마지막회에 코멘트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빗속의 드라이브에서 대화로 충분했거든요. 감독이 말하자고 했던 메시지가 다 집약되어 있던데요.

17작품을 만드는 것은 감독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본적으로 작품 내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제 지론(持論)입니다. 그전에는 작품 이외의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는 걸 인정합니다만, 전혀 이어지지 않는 결말이라 비판 및 분석하는 글을 쓰게 되면서 그를 이해하려는 다각적인 시도와 자료를 찿았으며 감독에 대한 이해도 병행하였습니다. (비평을 쓰려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평론을 쓰면서 보니 연출은 지정준세 였으면서 궁극적 결말은 지세로 내는 감독의 억지에 화가 날 수밖에요. 그런 생각들을 괄호를 열고 추가해서 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비판 자체는 절대 감정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감독에 대한 비난을 위해 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시는 [댓글 써주신 님]의 억측에 어이가 없을 뿐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가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궁극적 주제나 의도를 작품 안에서 충분히 표현해내지 못한 것은 작품의 표현 한계, 연출의 한계에 부닥친 것으로 봐야지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가르치려 들고 고자세로 시청자의 지적 수준이나 기타 자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정말로 오만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는 이해가 안가면 안보고 공감 않고 동감 않으면 그뿐입니다. 감독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어디까지나 선택일 뿐, 의무가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는 장르가 확실합니다. 그 장르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습니다. 저는 이 시트콤을 보기 시작할 때, 이 시트콤이 정극 요소를 가미한 실험적인 장르인줄은 앞서 밝힌 대로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TV 프로로서 마지막까지 지켜본 프로는 <지킥>이전에 1991~92<사랑이 뭐길래> 밖에 없습니다.) 그걸 몰랐다는 걸 탓하더라도, 결말이 이전 에피소드들과 개연성 없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네요.

 

제가 말하는 분노는 단순히 사랑하던 캐릭터가 죽어서가 아닙니다. 사랑하던 캐릭터가 감독의 의향에 따라 죽을 수도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감독이 결말을 내기위해 자신의 염세주의를 작품에 투영했다는 것 자체에 상당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지금 이 글에서는 그것도 인정합니다.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게 내가 가진 사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것일 수 있다고... 다시 말해, 염세주의적 성향 때문에 작품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의 염세주의와는 다른 요인(연출 부족으로 인한 설득력 부족, 결말에 억지로 맞추기 위한 일관성 없음) 때문에 작품을 이해할 수 없음(따로 노는 결말)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시청자 입장에서 감독이 연출하는 방법이나 사상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려 노력한 힘겨운 시도마저도 부정당했다는데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 그마저도 포기해야한다고요? 그것보다도 굴욕적인 시청자가 가져야할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기계적으로 영상을 녹화하듯 봐야 하는 건가요? 그런 조건을 요구하는 작품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적어도 시청자가 능동적으로 해당 작품에 대해 사유할 여지를 남겨놔야만 시청자가 작품에 공감한다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킥>이 그런 작품이었으면 저를 비롯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아예 안 봤을 겁니다.

한동윤씨는 캐릭터 사망이 이유가 아니겠지만, 다른 시청자들은 캐릭터들의 사망과 2커플이 이어지지 않은 것에 많은 분노를 하더군요. MBC가시면 쉽게 확인 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계속 염세주의에 대해 비판을 하시면서, 댓글에는 염세주의를 인정한다니 좀 이상하네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1화부터 블랙코메디로 시작을 했습니다. 마지막회라고 염세주의가 갑자기 튀어나온건 아니에요.

그리고 작품에 연출에 대한 비판이 주라는 한동윤씨의 말은 설득력이 없어요. 연출에 대한 비판이라면 연출 비판으로 끝나는 거지요. 그런데 한동윤씨의 글에는 자신의 불쾌함을 투영하면서 작품과 별개로 신세경이란 배우를 자기 주관으로 재단을 하고 김병욱 PD를 인격적으로 난도질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글을 써놓고는 본인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지요. 제가 가장 비판하는 점이 이것이구요.

시청자 입장에서 감독이 연출하는 방법이나 사상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려 노력한 힘겨운 시도마저도 부정당했다는데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라고 말한건 솔직히 말도 안되는 괘변이에요? 작품의 연출권은 시청자가 아니라 감독에게 있는 겁니다. 시청자는 보는 사람이구요. 연출이 허접했다면 이해가 가는 데, 연출이 허접했는 데 왜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것인지 본인스스로 잘 되새겨 보세요.

18다른 시청자들은 캐릭터들의 사망과 2커플이 이어지지 않은 것에 많은 분노를 하더군요. MBC가시면 쉽게 확인 됩니다.” 대목에 대해서는 저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패스.

 

염세주의가 투영되어 시청자들이 인식하는 현실을 부정한다는 점이 결말의 개연성을 약화시킨다는 취지로 계속 비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댓글에서는 그냥 그것도 (개연성을 약화시키든지 말든지) 비판 않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게 약점이라 생각하고 물고 늘어지지 마세요. 제가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주장을 무르려는 게 아니고요, 그것 말고 다른 걸 가지고도 비판할 여지가 충분히 있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감독의 억지가 불편하고 불쾌하며 그것 때문에 화가 나있다는 표현을 하긴 했지만, 그게 인신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감정의 상태가 인신공격을 시도했을 만한 것이고, 그래서 인신공격을 했다는 스스로의 억측을 실제라고 확신에 차서 말씀하시는 [댓글 쓰신 님]의 반응을 보니 살짝 실소가 나오는데요……. PD와 신세경씨의 염세주의에 대한 언급은 개인적인 저의 생각이며 추측이란 점은 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억측해서 이성 잃고 생사람 잡지마세요. 정말로 제가 걱정되는 것은 연출에 대한 저의 비판이 모자란 것이네요. 사실 제가 연출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니 당연한 것이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감독이 연출하는 방법이나 사상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면서 모든 걸 받아들이려 노력한 힘겨운 시도마저도 부정당했다는데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을 느끼는 겁니다이 말이 왜 궤변입니까? 감독의 사상 자체에 대한 능동적인 이해는 비판하거나 평론하려는 사람이 하는 겁니다. ([댓글 쓰신 님]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작품 자체에서 표현되는 감독의 연출, 사상 등을 부정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면서 공감하려는 자세를 취하기만 하면 됩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바를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시청자는 언제든지 해당 작품의 이해를 포기하고 떠날 수 있습니다. <지킥>같은 경우, 감독이 전달하려는 바가 일관성이 있고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말까지 떠나지 않고 시청자들이 봐왔는데, 결말에서 그동안 시청자들이 이해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다른 결론을 억지로 내리니, 그동안 시간을 투자하고 이해하려 했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 어이가 없어하고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원래 감독이 말하려고 했던 건 사실 원래 이런 거다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습니다. 보는 사람이 그렇다고 느끼는데 그게 감독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표현이 잘못된 것이지, 그 사람이 무식하고 무지해서 감독의 의도를 파악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보는 사람에 대한 정신적 폭력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저도 결말을 통해 그런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나니 저는 김PD의 작품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게 되었는데, 무슨 미련이 남아, 시청자 입장에서 벗어나 그래도 한번 이해해보려고 능동적 이해를 시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PD를 이해할수록 이분의 작품은 시청자 입장에서 불쾌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 아마도 결말을 뺀 나머지는 그만큼 연출을 잘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25화의 마지막은 제 첫 키스가 아닌데도 과거 제 첫사랑이 떠오르며, 정말 온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일 정도의 감동을 주는 연출이었거든요.

 

그러나 그런 장치와 복선마저도 다른 커플들 보다 특별히 강한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어떤 장치와 복선들의 경우, 다른 커플에 의해서 이미 사용되었던 것이라 꼭 지훈-세경만의 복선으로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막 관계가 시작되는 느낌의 연출과 강력하지 못한 장치들과 복선을 가지고 억지로 이끌어낸 것이 분명히 보이는 결말. 그 장치들과 복선이 사실은 모두 지훈-세경 커플을 위한 거라고 우기고, 지금까지 믿게 하고 인식하게 한 어떤 플롯으로 결말내는 것보다도 약한 개연성을 가진 결말이 진짜 결말이라고 우기는데 질릴 뿐입니다. 연출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그런 장치와 복선에 대한 보는 이의 자각은 극중 등장인물의 자각보다는 일찍 자각하게 해줬어야 극중의 등장인물이 늦은 자각을 하면서 절절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보는 이가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보는 이를 너무 따돌렸고, 그런 점을 단순히 작품의 불친절로 놓고 보더라도, 보는 이에게는 다른 러브라인의 연출과 장치 복선에 대한 공감이 더 컸기 때문에 심지어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믿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런 결말을 인정할 수 없었던 거고 심하게는 배신감까지 느꼈던 거라고 보면 됩니다.

세경과 준혁이 보다 세경과 지훈이 더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에피가 많지 않았나요? 물론 지훈은 세경을 챙겨준다는 동정에 가깝게 데리고 나간 것이지만, 세경에게는 행복한 추억이었지요. 지훈과 정음은 마지막회 몇 회나 전에 깨진 사이구요. 이건 복선도 암시도 아닌 사실이지요. 본인이 이해가 안 간다고 약한 개연성이라고 주장하는 건 좀 비약이 심한 것 아닌가 싶네요. 지훈이 정음보다 훨씬 많은 선물을 안겨준 상대는 세경이었는데요. 세경이는 지훈에게 안식처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세경이가 지훈을 짝사랑했던 것은 여러번 연출이 되었구요. 다만 지훈이만이 세경을 집에서 일하는 식모라고 선을 그었던 겁니다.

19저언혀요... 없었습니다. 전 에피소드를 통틀어 그동안 저는 그냥 동생으로 챙겨준다는 느낌 밖에 못 받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마지막 회 몇 회전에 이제야 관계가 시작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연출이 있긴 있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연출에서 마저도 제작진은 여전히 정음과의 관계를 부각시켰습니다. 지훈이 마지막 휴양지로 떠나기 직전까지도 계속 반지상자를 들고 있으면서 정음을 잡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지훈과 정음만 깨지면 되었군요? 세경은요? 세경은 전날 준혁과 키스를 하고 그 전전날에는 준혁과 함께 유원지를 간다는 구체적인 연출이 있었습니다. 세경이에게는 준혁도 안식처로 보였습니다. 세경의 지훈에 대한 짝사랑은 더 절절해지지기는커녕 뒤로 물려지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뭐 딱히 지훈-세경의 개연성을 부정하지 않아도, 지훈-정음 그리고 준혁-세경 커플링도 개연성이 있었음은 확실합니다. (저는 지훈-세경보다도 훨씬 강력했다고 말하고 싶지만 제 시각일 뿐이라고 말씀하실 거 같아서 그만두겠습니다.) 그런데 감독이 그런 여러 가지 개연성 중에서 하필이면 왜 지훈-세경을 선택했는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부터 지훈-세경으로 결말이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연출을 통해 믿어버리게 된 커플링들이 어떻든지 간에 처음부터 감독 본위대로 할 것임을 알았을 때의 그 기분은 분명 분노였지요. 속은 기분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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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26화 연출 자체가 뛰어났다는 점은 전 인정합니다. 그러나 126화와 그 이전의 에피소드간의 개연성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제 주장은 절대 못 굽히겠네요.

 

블로깅에 대한 충고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저는 원래 블로거가 아닙니다. 이런 글을 쓰는 것보다 수학 문제를 접하는 게 훨씬 편한 과학도, 과학자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블로깅을 계속하게 된다면,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는 자세로 오시는 분들에게 한분도 빠짐없이, 저도 마찬가지로 예의를 갖추고 존중하고 성의를 다하는 모습 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